"하? 왜?"

분명 아까전까지는 맑았는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막을 우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운명은 조금 망연자실하게 유일한 파트너인 패리퍼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데, 어쩌지.' 패리퍼는 깜빡거리다가, 날개를 펼쳐 트레이너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이렇게 하면 비를 안 맞을 수 있지 않을까?'

"…… 고마워."

트레이너는 힘없이 중얼거렸고, 포켓몬은 기뻐했다―필요한 존재가 되는 일은 중독성이 있었다.


돌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곤란할 정도로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내렸다. 패리퍼의 날개로 우산을 대신한 덕분에 그다지 젖지는 않았지만, 운명은 예상보다도 일찍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쩌면 역시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만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 비는 신이 내게 내리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뭘 시작해도 실패할 거야 실패할 거야 역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아, 하고, 진흙이 된 흙을 밟는 발걸음마다 새기며 멀지 않은 온 길을 돌아가 집으로, 집으로.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도달하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먹구름이 운명을 따라온 것이다. 끊임없는 잔비는 현관을 적시고, 거실을 적시고, 방을 적시고……

그러나 운명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다. 다만 비가 아닌 강한 햇살이, 실내에도 가득하게 쏟아지던 기억이 저주스러워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운명은 쓰게 웃었다.  

"패리퍼, 돌아와."

빛에 감싸인 채 패리퍼가 볼 안으로 되돌아가자, 당연하다는 듯이 비가 멎었다. '역시나.' 축축해진 운명은 손 안의 몬스터볼을 힐끔 보았다.

"…… 그나저나 곤란한 포켓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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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40초~45초 구간에 흑백으로 느리게 깜빡이는 연출이 있습니다. (광과민성 반응 경고)
(* 피츄→피카츄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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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캡처 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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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지방, 잔디마을.

 

호연지방은 홍수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바닷가의 일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내륙지역인 잔디마을에 세워진 저택은 언제나처럼 고고하게 서있었다.

 

이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3년만일까.

 

(딩-동-)

 

#???

누구세요~?

 

#운명

신오지방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에요~.

 

#???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하신 분이 오셨군.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원으로 이어지는 울타리가 개방되고,

가장 먼저 운명을 맞이하러 뛰쳐나온 것은 한 마리 블레이범이었다.

뒤따라 포켓몬 여섯 마리와 함께 운명의 오랜 악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스·뷰티플라이

어서 와, 데스티니. 네가 전화하고 나서부터 포켓몬들이 어찌나 기다렸는지.

 

(배경 전환)

 

자신의 무릎 위에 엎드린 커다란 나인테일을 쓰다듬고 있으면,

꼭 10년 전으로 시간이 돌아간 것 같다.

나인테일이 늘어지는 자세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목 근처를 약간 간지르면 갸르릉, 하고 우는 것도.

하지만 지금의 나인테일의 반짝이는 털은 10년 전의 싸움에서 흙탕물을 구르고 잔뜩 엉키던 시절과는 전혀 딴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결이 좋아졌니, 나인테일?

 

#운명

아, 포핀 먹어볼래?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금방 제지당한다.

 

#미스·뷰티플라이

포핀 아무거나 먹이지 마. 나는 내가 만든 거 아니면 내 포켓몬한테 안 먹여.

 

(배경 전환)

 

117번도로.

 

야생 마릴이 나타났다!

야생 소금쟁이가 나타났다!

 

(낚시하는 그림)

야생 잉어킹이 나타났다!

야생 콘치가 나타났다!

야생 가재군이 나타났다!

 

#미스·뷰티플라이

뭘 그렇게 찾는 거야? 보고 있기 답답하네.

 

#운명

있잖아… 여기 주변에 물짱이는 안 나와~?

 

#미스·뷰티플라이

뭐? 물짱이?

그런 게 여기서 왜 나와?

물짱이가 갖고 싶으면 신참 트레이너인 척하고 박사님한테 가보든가~.

아무도 안 속겠지만.

 

#운명

아니,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거든요.

 

(배경 전환)

 

호연지방, 잔디마을

 

비가 막 그친 마당에, 운명은 예전의 여행 동료들과 함께 나와있었다.

신오지방보다 환한 달빛이 축축한 잔디를 반짝반짝하게 비췄다.

 

#운명

있잖아, 나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운명의 말에 포켓몬들이 모여든다.

다른 한 명의 트레이너는 베란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볼 뿐이다.

 

#운명

나, 신오지방에서 위험한 것들을 많이 알아버렸어.

그래서 난 이제부터 잔뜩 싸우고, 잔뜩 강해질 거야.

이건, 옛날처럼 멋져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냐.

이건…… 우리가 같이 있었던 신오지방을 지키기 위한 거야.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너희도 신오지방에서 왔잖아.

그리고 분명히 배틀은 즐거울 거야.

강해질 때마다 보람도 있을 거구.

다시 한번,

나랑 같이 오지 않을래?

 

무거운 기류가 흐른다.

표현을 고르는 포켓몬들 사이에서, 블레이범이 가장 먼저 풀쩍 다가왔다.

 

#블레이범

―.

 

('언제나 너를 사랑해. 내 첫번째 트레이너, 운명.')

 

포켓몬의 언어로 속삭이고는,

마치 브케인으로 돌아간 것처럼 전 트레이너의 뺨을 핥았다.

그리고 뒤돌았다.

블레이범이 돌아간 곳에는 또 한명의 트레이너가 어느새 다가와 서 있었다.

 

#미스·뷰티플라이

우리 애들이라고 해서 너를 따라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야.

단지…

이 아이들은 이제 어금니로 사는 짐승이 아닌 거야, 미스 데스티니.

지금의 네 멤버와 배틀하면 질 걸.

틀림없이 배틀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었던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을 배틀이라는 길에서 떨어트린 건 다름아닌 너잖아, 그렇지?

 

(배경 전환)

 

#미스·뷰티플라이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운명?

 

#운명

갑자기?

 

크림치즈를 바른 크래커를 집어들며,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미스·뷰티플라이

호연지방에는 '배틀 프런티어'라는 너 같은 녀석들이 좋아할 것 같은 대단한 시설이 있다고.

 

#운명

그거, 신오지방에도 있었는데. 닫았지만.

 

#미스·뷰티플라이

호연지방도 닫았어.

 

#운명

그럼 왜 얘기한 거야?

 

#미스·뷰티플라이

다른 지방에는 비슷한 게 아직 남아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성도지방, 하나지방, 알로라~ 뭐 이런 데? 배틀 시설 말이야.

이번엔 여기서 언제까지고 죽치지 말고 빨리 그런 데로 가버리라구~.

 

#운명

(배틀 시설….)

 

(배경 전환)

 

#미스·뷰티플라이

블레이범, 쾌청!

 

장내를 가득 채우는 밝은 햇살.

이것은 익숙한, 살이 타는 감각.

콘테스트장 전체가 햇빛에 물들어, 블레이범의 세계가 된다.

 

#미스·뷰티플라이

자, 지금입니다, 블레이범!

블라스트번~!!

 

장내가 터질 듯한 불꽃에 휩싸인다.

 

완벽한 어택 콤보는 관중을 열광시켰다.

다음 차례의 포켓몬은 풀이 죽은 듯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블레이범이 저토록 아름다웠던 적이 있었던가.

 

#로파파

('블레이범이 그랜드 페스티벌에 가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

 

(배경 전환)

 

(선원)

이렇게 바다가 거친 시국에 다른 지방까지 배여행을 하겠다니 참 배짱도 두둑하군.

뭐, 너 같은 녀석들 덕분에 우리 같은 선원도 사는 거지만.

 

#???

코터-스.

 

유일한 승객으로서 배에 올라타려던 순간, 포켓몬의 울음소리에 뒤돌았다.

목끝까지 물에 잠긴 코터스 한 마리가, 움직일 생각도 않고 육지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비에 파도까지 휘몰아치고 있어서 사람도 종아리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저 코터스는 물속에서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운명

피츄, 네가 가서 한번 물어봐봐~. 무슨 일이래~?

 

운명의 어깨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피츄가 코터스에게로 뽈뽈 달려갔다 온다.

 

#피츄

삣- 삐이츄우.

('고향이 물에 잠기는 모습이 너무 슬프대.')

 

#운명

에고, 그렇다구 저렇게 가만 있으면 쟤도 잠기겠다.

 

휙-

운명은 대단한낚시대를 던졌다!

 

#코터스

???

 

#운명

너는 나를 따라~ 와라~!

가랏, 다이브볼!

 

신난다!

운명은 코터스를 잡았다!

 

(배경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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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스크립트 전문, 공미포 74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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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내린 은혜로 온종일 찬란히 빛나는 도시, 물가시티. 나름대로 신오지방을 여행한 경력이 있었지만 물가시티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고, 운명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따사로운 태양이 이렇게 기분 좋게 느껴진 것은 얼마만일까.
‘쾌청’을 포기한 이후로 뜨거운 햇빛 같은 것은 싫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뒤집어쓰고 있던 우비를 벗고, 벤치에 늘어져 도시의 햇볕을 온몸으로 환영해본다.
물가시티는 저항의 도시였다.
개인의 삶을 조종하는 거대한 권력에 굴복하고, 포기하고 있던 자신 안의 무언가를 흔들어 깨우는 도시. 빼앗기지 않을 가능성의 세계, 그 첫 조각 같은 도시.
일어나, 마주해.
(하지만, 너는 저번 체육관조차…)
이기지 못했어.
(나는 이렇게나 나약한데.)
확실히, 나는 부족할지도 몰라. 나에게 부족했던 건…
“이기기 위한 각오야.”
“우리, 이제부터는 조금 더 힘내야 할 거야. 따라올 수 있지, 다들?”
몇 년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을 진심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트레이너를 향해, 포켓몬들은 그의 일부로서 그를 마주보아 왔다.

바다를 향해,
“어~이, 대포무노! 들리냐~! 이 근처 바다에 너네 무리 사는 거 다 알거든~?! 너도 지금쯤이면 이 근처까지 꼬물꼬물 도착했겠지?! 들리냐~?!”
(서두가 길다.)
“우리는 이제부터 진짜 강해질 거야~! 그러니까 돌아오고 싶으면 지금 돌아와라~?! 강해진,” 어, “철시드랑 배틀해서 이기면 끼워줄게~!”
‘?’

자, 지금까지 아껴왔던, 너희를 위한 달콤한 디저트야.
포핀을 예상하던 포켓몬들 앞에 들이밀어진 것은 예쁘장한 푸른 포장지로 감싸인 사탕.

나의 가장 오랜 파트너, 나의 폭풍 패리퍼에게 사탕을.
땅을 울리며 싸우는 용맹한 전사, 두까비에게 사탕을.
내 마음이 멀리에 떠나있었을 때조차 우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한결같이 이어준 징검다리, 철시드에게 사탕을.
우리의 마음을 춤추게 하는 무희, 로파파에게 사탕을.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와 함께 강해질, 신성新星 피츄에게 사탕을.

.

.

피츄 친밀도 [2/5]

이상한사탕 적용:
패리퍼 1개, 36~40 레벨대 [4/4]에 해당, 레벨 40→45
두까비 3개, 26~30 레벨대 [3/3]에 해당, 레벨 30→35
철시드 3개, 20~25 레벨대 [3/3]에 해당, 레벨 25→30
로파파 1개, 20~25 레벨대 [3/3]에 해당, 레벨 24→29
피츄 1개, 6~10 레벨대 [2/2]에 해당, 레벨 6→11
잔여 이상한사탕 갯수: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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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무노는 '실망했다'고 일축했다.

잊지 말아줘

잊지 말아줘

나와 보낸 하찮은 나날을

/倉橋ヨエコ, ジュエリー

 

.

.

(* 피츄 6~10 레벨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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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무노가 몬스터볼에서 튀어나온 것은 언제나의 도서관에서 나와, 운하체육관을 지나던 즈음이었다. 배틀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자의로 몬스터볼에서 나오는 일은 좀처럼 없는 대포무노였기에, 운명은 조금 의외라는 듯이 뒤돌아 물었다.

     “무슨 일이야, 대포무노~?”

     아, 바닷바람이 참 좋지? 대푸모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운명이 멋대로 상정했다. 실없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대포무노는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 정말 냉정하구나, 운명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포무노는 대신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체육관을 가리켰다.

     사실은 트레이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배틀을 좋아하는 대포무노가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지. 하지만 대포무노가 알고 있는 자신의 트레이너는 한시도 솔직해지지 않는 인간이었다. 위선자 같으니라고…… 인간에게 결코 후한 평가를 내리는 일이 없는 대포무노가 포켓몬만의 언어로 중얼거렸다. 인간을 향해서는, 조금 다른 말을 건네었다.

     ―대포. (이번에도 체육관에는 도전하지 않는 건가?)

     “웅, 연고시티에서도 체육관은 그냥 지나쳤었잖아~?”

     ―노. (왜지?)

     “…… 배지는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거래. 배지 같은 걸 걸고 배틀하면 배틀 자체가 즐겁지 않아져버리잖아?”

     ―대포무노. (궤변이군.)

     “…… 지금은 진짜로 그래~. 카일럼이라는 높으신 분들이 배지를 따라고 강요하거든~.”

     ―무노. (숭고한 정의감이 있어서 좋겠군.)

     “아하하, 숭고하달 것까진~.”

     능숙하게 웃어넘기는 제 트레이너의 모습을, 대포무노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단시간에 자신을 총어에서 대포무노로 진화시킨 유능한 트레이너. 그와 함께 지금까지 여러 배틀을 넘어와, 지금의 자신은 상당히 강해져있었다. 무리에서 뒤쳐졌던 총어 시절과 비교하면……

     하지만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므로 더더욱, 만약 자신의 레벨이 이미 트레이너의 레벨보다 높아진 것이라면……

 

(공미포 743자)

(이미지의 글귀는 Nirvana - Heart Shaped-Box의 오마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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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우와~ 밖에 비 엄청 온다.”

     “그러게~. 어제는 안 와서 이제 좀 그치나 했는데.”

     “야, 안 그쳐, 안 그쳐. 난 이제 호연지방 날씨가 괜찮아질 거란 희망은 버렸어. 그래도 트레이너들 인생 다 말아먹은 신오지방보단 비 계속 오는 게 낫지.”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도 마당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빼고는 이상하지 않은 대화였다. 포켓몬이란, 신비한 생명체다… 분명 호연지방 전체에 폭우에 가까운 비가 내리고 있는데, 딱 이 마당만 거짓말처럼 날씨가 맑은 것이다.

     마법의 비밀인 나인테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평한 얼굴로 운명의 무릎 위에 늘어져 있었다. 운명은 익숙한 손길로 나인테일의 푹신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잔디가 깔려있는 넓은 마당은 포켓몬들이 뛰어놀기 제격이었다. 풀 포켓몬 친목 모임을 결성한 엘풍과 철시드와 로파파, 그 모임에서 혼자 빠져있는 아웃사이더 다탱구, 반대로 자기도 풀 포켓몬인 척 껴있는 뷰티플라이, 자기보다 몇 배는 커다란 불비달마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피츄, 비 오는 날의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두까비와 트리토돈, 낮잠을 자고 있는 블레이범… 모두가 나와 있었다.

     패리퍼만은 잠시 몬스터볼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패리퍼도 불만은 없었다―항상 비가 내리는 호연지방에 온 이후로, 패리퍼는 완전히 자유롭게 몬스터볼 밖에서 날아다닐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시내 등을 구경한 것은 진화해서 특성 ‘잔비’를 얻은 이후로는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너도 신오지방 출신이면서…….”

     달콤한 과일이 잔뜩 들어간 에이드를 빨며 운명이 볼멘소리를 했다. 건너편에 앉은 운명의 오랜 악우이자 포켓몬 콘테스트 계의 떠오르는 샛별 ‘미스 뷰티플라이’이기도 한 인물이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 쳤다.

     “하, 이민 온 지가 언젠데? 난 호연 여자야, 호연 여자. 알겠니? 트레이너 접은 신오지방 운 모 양과는 달리 그랜드 페스티벌 우승을 목전에 둔 멋진 호연 여자라구.”

     “트레이너 그만둔 거 아니거든~.”

     “배지 따는 거 그만둔다며.”

     “그게 그게 아니지~.”

     “스무 살이나 먹어서는 이제 배지 다 만료되게 생겼다고~ 트레이너 인생 끝났다고 울면서 뛰어온 다 큰 어른이 누구였더라~?”

     아.

     오래된 이야기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서, 운명 스스로도 조금 당황한다.

     “… 정말,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말하는 데에는 재주가 있다니까.”

     그래도 초콜릿이 들어간 쿠키를 한 입 우물거리며, “쿠키가 맛있으니까 봐줄게~.”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조금 어른이 된 걸까.

     직접 만든 과자를 칭찬받은 ‘미스 뷰티플라이’는 활짝 웃는다.

     “웬일로 듣기 좋은 말을 하네~.”

     “너도 배워~.”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에, ‘툭’ 하고, 불현듯 빗방울이 떨어진다.

     ‘툭’은 금세 ‘투두둑’이 되고, 어느새 마당에도 폭우가 쏟아진다.

     “야, 가뭄 타임 끝났다!! 빨리 들어가자!!”

     불꽃 포켓몬들은 특히 물에 약하다―피크닉 테이블에 놓여있는 몬스터볼들을 다급하게 주워 포켓몬들을 되돌려보내는 일은 둘이서 함께 한다.

     다시 피크닉 테이블에 놓인 포켓몬이 들어 있는 몬스터볼 여섯 개를 당연하단 듯이 본인의 가방에 넣는 악우의 모습을 보며, 운명은 그가 입에 담았던 ‘전 주인’이라는 표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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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리퍼 31~35 [3/3], LV. 35→LV. 40)

(공미포 1004자)

 

     “와우~! 웰컴 백! 투 잔모래마을~! 샌드젬 타운~!”

     ―패리퍼~!

     오랜만에 보는 밤의 잔모래마을 바닷가는 아주 근사했다. 약간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운명과 패리퍼는 들뜬 기분이었다. 가벼운 빗발도 기분이 좋은 밤이었다.

     오래간만에 돌아오는 고향이란 그런 법이다. 운명은 특별히 애향심이 깊은 타입은 아니었지만,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은 누구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인 법. 운명과 패리퍼는 둘 다 잔모래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지막으로 집을 떠났을 때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면 정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트레이너 캠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보게 된 일, 그 사람들과 함께 생태도감을 채우면서 여행하게 된 일, 배지를 다시 따기 시작했던 일, 얼마 안 가서 또 체육관전에서 졌던 일, 카일럼 본사에 가서 대표이사와 이야기했던 일, 믿었던 기업의 구린 뒷면을 보고 충격받아 배지 따는 걸 그만두기로 했던 일…

     “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는걸~.”

     하도 어이가 없어서 큰 소리로 말하자, 패리퍼도 곁에서 같이 키득거렸다.

     “그치만 말야, 아리아 님이 했던 말도 맞는 말이긴 했지~.”

     ―패리~?

     “카일럼이 체육관 시스템을 만든 건 아니니까…~ 좀 이상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렇다구 내 인생을 전부 카일럼의 탓으로 돌리는 건 좀…” 무슨 단어를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말한다. “어른스럽지 못할 거 같아.”

     ―패리퍼.

     패리퍼가 끄떡였다. 이 잔모래마을에서 알을 깨고 나온지도 어연 1년은 훌쩍 넘었다. 그사이에 운명의 곁에서 자라고, 강해지고, 진화했다. 이제는 완전히 성체가 된 패리퍼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운명이 스스로 선택하고, 싸우고, 강해져 온 것을 지켜봐 왔기에 알고 있었다. 패리퍼가 보기에 그것은 조작된 인생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누군가가 만든 틀 속에 갇혀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것이 카일럼이 만든 틀이든, 아니면 더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체육관 도전의 전통이든.

     체육관 배지라는 틀에 트레이너를 가두려고 했던 카일럼의 모습에서, 운명은 자기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멘티들의 뒷모습을 보고 그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정말 중요한 게 뭐였는지 기억났어.”

     애초에 체육관 배지라는 제도는, 왜 생겨났던가.

     “도전은 나와 너희들만을 위한 것이면 충분해. 원래는 다른 누군가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한 싸움이 아니야. 패리퍼, 나, 기억났어―”

     늦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갈수록 파도도 강해진다. 어느새 폭풍우의 한가운데가 된 바닷가에서, 운명은 기억해낸 것을 파트너에게 전했다.

     “배틀은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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