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지방, 잔디마을.
호연지방은 홍수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바닷가의 일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내륙지역인 잔디마을에 세워진 저택은 언제나처럼 고고하게 서있었다.
이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3년만일까.
(딩-동-)
#???
누구세요~?
#운명
신오지방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에요~.
#???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하신 분이 오셨군.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원으로 이어지는 울타리가 개방되고,
가장 먼저 운명을 맞이하러 뛰쳐나온 것은 한 마리 블레이범이었다.
뒤따라 포켓몬 여섯 마리와 함께 운명의 오랜 악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스·뷰티플라이
어서 와, 데스티니. 네가 전화하고 나서부터 포켓몬들이 어찌나 기다렸는지.
(배경 전환)
자신의 무릎 위에 엎드린 커다란 나인테일을 쓰다듬고 있으면,
꼭 10년 전으로 시간이 돌아간 것 같다.
나인테일이 늘어지는 자세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목 근처를 약간 간지르면 갸르릉, 하고 우는 것도.
하지만 지금의 나인테일의 반짝이는 털은 10년 전의 싸움에서 흙탕물을 구르고 잔뜩 엉키던 시절과는 전혀 딴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결이 좋아졌니, 나인테일?
#운명
아, 포핀 먹어볼래?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금방 제지당한다.
#미스·뷰티플라이
포핀 아무거나 먹이지 마. 나는 내가 만든 거 아니면 내 포켓몬한테 안 먹여.
(배경 전환)
117번도로.
야생 마릴이 나타났다!
야생 소금쟁이가 나타났다!
(낚시하는 그림)
야생 잉어킹이 나타났다!
야생 콘치가 나타났다!
야생 가재군이 나타났다!
#미스·뷰티플라이
뭘 그렇게 찾는 거야? 보고 있기 답답하네.
#운명
있잖아… 여기 주변에 물짱이는 안 나와~?
#미스·뷰티플라이
뭐? 물짱이?
그런 게 여기서 왜 나와?
물짱이가 갖고 싶으면 신참 트레이너인 척하고 박사님한테 가보든가~.
아무도 안 속겠지만.
#운명
아니,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거든요.
(배경 전환)
호연지방, 잔디마을
비가 막 그친 마당에, 운명은 예전의 여행 동료들과 함께 나와있었다.
신오지방보다 환한 달빛이 축축한 잔디를 반짝반짝하게 비췄다.
#운명
있잖아, 나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운명의 말에 포켓몬들이 모여든다.
다른 한 명의 트레이너는 베란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볼 뿐이다.
#운명
나, 신오지방에서 위험한 것들을 많이 알아버렸어.
그래서 난 이제부터 잔뜩 싸우고, 잔뜩 강해질 거야.
이건, 옛날처럼 멋져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냐.
이건…… 우리가 같이 있었던 신오지방을 지키기 위한 거야.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너희도 신오지방에서 왔잖아.
그리고 분명히 배틀은 즐거울 거야.
강해질 때마다 보람도 있을 거구.
다시 한번,
나랑 같이 오지 않을래?
무거운 기류가 흐른다.
표현을 고르는 포켓몬들 사이에서, 블레이범이 가장 먼저 풀쩍 다가왔다.
#블레이범
―.
('언제나 너를 사랑해. 내 첫번째 트레이너, 운명.')
포켓몬의 언어로 속삭이고는,
마치 브케인으로 돌아간 것처럼 전 트레이너의 뺨을 핥았다.
그리고 뒤돌았다.
블레이범이 돌아간 곳에는 또 한명의 트레이너가 어느새 다가와 서 있었다.
#미스·뷰티플라이
우리 애들이라고 해서 너를 따라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야.
단지…
이 아이들은 이제 어금니로 사는 짐승이 아닌 거야, 미스 데스티니.
지금의 네 멤버와 배틀하면 질 걸.
틀림없이 배틀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었던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을 배틀이라는 길에서 떨어트린 건 다름아닌 너잖아, 그렇지?
(배경 전환)
#미스·뷰티플라이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운명?
#운명
갑자기?
크림치즈를 바른 크래커를 집어들며,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미스·뷰티플라이
호연지방에는 '배틀 프런티어'라는 너 같은 녀석들이 좋아할 것 같은 대단한 시설이 있다고.
#운명
그거, 신오지방에도 있었는데. 닫았지만.
#미스·뷰티플라이
호연지방도 닫았어.
#운명
그럼 왜 얘기한 거야?
#미스·뷰티플라이
다른 지방에는 비슷한 게 아직 남아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성도지방, 하나지방, 알로라~ 뭐 이런 데? 배틀 시설 말이야.
이번엔 여기서 언제까지고 죽치지 말고 빨리 그런 데로 가버리라구~.
#운명
(배틀 시설….)
(배경 전환)
#미스·뷰티플라이
블레이범, 쾌청!
장내를 가득 채우는 밝은 햇살.
이것은 익숙한, 살이 타는 감각.
콘테스트장 전체가 햇빛에 물들어, 블레이범의 세계가 된다.
#미스·뷰티플라이
자, 지금입니다, 블레이범!
블라스트번~!!
장내가 터질 듯한 불꽃에 휩싸인다.
완벽한 어택 콤보는 관중을 열광시켰다.
다음 차례의 포켓몬은 풀이 죽은 듯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블레이범이 저토록 아름다웠던 적이 있었던가.
#로파파
('블레이범이 그랜드 페스티벌에 가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
(배경 전환)
(선원)
이렇게 바다가 거친 시국에 다른 지방까지 배여행을 하겠다니 참 배짱도 두둑하군.
뭐, 너 같은 녀석들 덕분에 우리 같은 선원도 사는 거지만.
#???
코터-스.
유일한 승객으로서 배에 올라타려던 순간, 포켓몬의 울음소리에 뒤돌았다.
목끝까지 물에 잠긴 코터스 한 마리가, 움직일 생각도 않고 육지를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비에 파도까지 휘몰아치고 있어서 사람도 종아리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저 코터스는 물속에서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운명
피츄, 네가 가서 한번 물어봐봐~. 무슨 일이래~?
운명의 어깨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피츄가 코터스에게로 뽈뽈 달려갔다 온다.
#피츄
삣- 삐이츄우.
('고향이 물에 잠기는 모습이 너무 슬프대.')
#운명
에고, 그렇다구 저렇게 가만 있으면 쟤도 잠기겠다.
휙-
운명은 대단한낚시대를 던졌다!
#코터스
???
#운명
너는 나를 따라~ 와라~!
가랏, 다이브볼!
신난다!
운명은 코터스를 잡았다!
(배경 전환.)